
양수연 작가는 이른바 전통 회화의 소재와 기법을 진정성 있게 전승하면서 응용하고 있는 작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양 작가의 작품은 비단이나 한지에 먹을 이용하여 사실적인 방식으로 그린 “십장생도(十長生圖)”이다. 민간신앙에서 ‘늙지 않고 오래 살기(불로장생; forever young, never die)’를 기원하면서, 장수하는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직접 실물을 숭배하거나 이미지로 만들어 숭배한 열 가지 대상은 해, 산, 물, 돌, 구름(또는 달),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또는 대나무이다. 십장생에 대한 기록이 고구려 시대의 고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그것의 역사가 길다. 그릴 소재가 10종류나 되기 때문에 십장생도는 전통적으로는 주로 병풍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양 작가는 제목을 영어로 <The Ten Immortals>라고 칭한 그림에서는 병풍 형식으로든, 이단화(diptych) 형식으로든, 한 화면에 그리든 “장생하는 것” 10종류를 모두 등장시키고 있다. 이 영어 제목은 번역하면 ’10개의 불멸하는 것’이다. 서양의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영어로 ‘mortal(죽는)’한 존재는 인간으로, 반면 ‘immortal(죽지 않는)’한 존재는 신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양 작가의 작품에서 이것들은 신적인 존재로 보다는 – 적어도 동북아시아 문화권의 관객에게는 큰 무리 없이 수용될 수 있는 개념인 – “이상향”을 재현하기에 효과적인 소재로 사용됐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양 작가가 십장생을 평화롭게 모여 있는 모습으로 등장 시킨 그림은 동양에서는 무릉도원(武陵桃源)으로 불리는 “세속을 떠난 별천지”를, 서양에서는 “황금시대”로 불린 시대/장소를 연상시키는 산수화이다. 이러한 이상향은 동양에서는 상상 속의 장소이지만, 서양에서는 ‘잃어버린 시대’를 의미한다. 그러나 양 작가가 십장생의 조합으로 채운 조용하고 평화로운 ‘세계’는 이상향인지 ‘잃어버린 황금시대’인지 불분명하다. 양 작가는 십장생 가운데 사슴을 가장 자주 그렸다. 사슴이 양 작가의 “십장생도”를 포함해서 전시된 작품 중 대부분에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모두 고독해 보인다. 삼단화(triptych) 형식의 작품인 <Never Has Been, Never Will Be>에서는 좌측 날개 면에는 학이 목이 꺾여 거꾸로 추락하는 모습으로, 중앙 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죽은 나무가 등장한다. 이러한 맥작에서 볼 때 ‘선배 작가들’에게는 동경 대상이었던 ‘십장생이 거주하는 곳’이 양 작가의 그림에서는, 독일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이 일찍이 1903년에 대도시의 삶을 관할하고, 사람들이 의미 있는 관계와 감정적인 교류를 피한다고 진단하면서 그 결과로 나타난 현상으로 설명한, 현대 도시인의 “무관심하고 활기 없는(blasé)” 심리상태가 느껴진다.1)
1) Georg Simmel, Die Großstädte und das Geistesleben (The Metropolis and Mental Life), 1903을 참조하시오.
‘갤러리시선 3년 84명의 작가들’, 2021, p.104.
김정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교수)